Canvas Robo / 캔버스 로보
어렸을 때부터 저는 로봇 장난감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가 문구 유통업을 하셨기에 다양한 완구를 가질 기회가 동년배에 비해 더 풍부했습니다. 국내에 유통되던 완구의 상당수는 해외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완구의 근간이 되는 원작 애니메이션은 몇 예외적인 작품을 제외하고는 수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장난감을 서사가 부재한 겉-이미지로 소비했습니다.
비록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지만, 만족감은 항상 짧았습니다. 당시 장난감 박스 옆면을 보면 특정 시리즈를 모아야 합체가 되거나 로봇으로 변형이 되는 류의 조립식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체계적으로 장난감이 유통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저는 원하는 특정 장난감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의 상상의 로봇을 만든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사야 전용 자쿠의 왼쪽 팔, 건담 헤비암즈의 몸통, 에바 2호기의 하체, 그리고 샤이닝 건담의 머리를 결합하는 식이었습니다. 수집과 디오라마를 통한 재미는 거의 느끼지 못했고, 제 머릿속 망상을 지속시키기 위한 스킨 생성을 위해 장난감을 끊임없이 떼었다 붙였다 하며 소비했습니다. 그 안에서는 원작의 서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장난감을 통해 저만의 폐쇄적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캔버스 로보는 유소년 시절의 경험과 현대미술가로서의 문제의식을 토대로 만든 작업입니다. 캔버스 로보의 기본 형태는 순백의 캔버스입니다. 하지만 변신해서 로봇도 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사이즈의 캔버스 위에 서로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면 다른 그림이듯이, 캔버스 로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표현하고 상상하느냐에 따라 캔버스 로보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