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환영에 저항한다는 표현을 즐겨 쓰곤 했다.
이러한 표현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고, 일종의 강박의 방향으로 작업에서 구현되었다.
그리고 곧 그 강박은 공격성으로, 그 공격성은 알레르기로 이어졌다.
어떤 명명할 수 없는 알레르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
벅벅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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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뱀에 물린 적이 있다.
간호사는 Snake Bite!를 연신 외쳤고, 나는 의학 드라마에서나 봤던 빨간불이 번쩍거리는 응급실로 끌려갔다.
의사는 다급한 표정으로 다양한 뱀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나를 문 뱀을 찾을 수 있겠냐고.
당연히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뱀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을 뿐, 정작 뱀한테 물린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나에게 설명해 줬다. 뱀의 독은 유독한 물질의 집합이라, 그 집합된 모든 성분에 맞는 해독제를 맞아 야 한다고. 그리고 각 뱀마다 그 배합이 다르다고.
그 결과 나는 한국 독사에 대한 모든 해독제를 주사로 맞았다. 대략 스무 번 넘게. 양쪽 팔과 엉덩이는 바늘구멍투성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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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은 강연에서 ‘우리는 지구라는 우주선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불과 얼마 전에서야, 나는 내가 이미지라는 우주선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했다.
다소 느슨하지만, 더 치열하게, 우주선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반성하고 매개하고 있다.
결국 내 작업들은 그 과정에서 나온 흔적이자 기록이며 흐름 속 하나의 점이자 구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