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Period / 블루 피리어드
기초도형. 반복 숙달 속 지루함의 연속.
피카소의 청색 시대. 우울 속에서 그렸던 푸른빛 도는 회화들.
잉크 퇴색된 푸른 상자. 오래된 문방구 유리창을 수놓은 빛바랜 상품들.
기본기라는 이름의 토대. 쌓아 올린 다음 무너뜨리는.
청색 시대에서 다뤘던 대상. 소외된 자들, 결핍으로의 하강.
푸른 상자 표면에 잔존하는 기억. 점점 더 희미해지는 것들. 방치된 것들.
작업 블루 피리어드는 동네 문방구 유리창 속 완구 상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햇빛에 의해 푸르게 퇴색된 표면은 오랜시간 방치된 물성을 드러내는 시간의 흔적이자 이미지입니다. 그저 그자리에 존재했을 뿐인 탈색된 잉크의 푸른 표면은 피카소의 특정 시기 작품군인 청색 시대를 연상시킵니다. 해당 시기 때 피카소는 지독한 우울증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그렸습니다. 당시 그의 작업은 비평가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고, 결과적으로 그를 곤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피카소의 내재적 하락은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인 '저급함'과 연동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문방구 전면 유리 앞 푸른빛 도는 상자들은 가치를 호명받지 못한 저급한 것으로서 방치되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막연히 미대를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미술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제가 처음 그린 건 정육면체 소묘였습니다. 몇 날 며칠을 그리다가 답답한 마음을 못 참고 평소에 낙서했던 로봇 그림을 학원 선생님한테 보여주었습니다. 그 낙서를 보여준 이후에 위층 디자인 입시반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정육면체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저는 더 많은 기초도형을 수채화로 외워 그려야만 했습니다. 저는 수채화에 지독히도 재능이 없었고, 다른 학생들은 두 세장 그리고 넘어가는 과정을 혼자서 서른장 넘게 그리며 고통 받았습니다. 여전히 그때의 감각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푸른빛 도는 회화를 그렸습니다. 흔히 조립식으로 불리는 장난감의 한 형태는 금형 사출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각 파츠들은 런너(플라스틱 틀) 위에 붙어 있으며, 이때의 상태는 평면으로 독해됩니다. 그리고 각 부품을 떼내어 조립하는 순간, 각 파츠들은 특정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모델이자 입체로 변형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회화적 맥락으로 실천함으로써 시각예술 속 입체와 평면 사이의 관계도를 탐구합니다. 오래된 장난감 상자 사이즈에 맞추어 캔버스를 자른 다음, 박스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상자 표면에는 여러 방식으로 조합된 기초도형이 그려져 있고, 상자 안은 과거 장난감 키트 안에서 볼 수 있었던 조립식이 들어 있습니다. 작업 블루 피리어드는 방치되어가는 기억과 희미한 잔존 그리고 저급한 이미지에 대한 제 해석이자 회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