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gerous Painting / 위험한 회화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위험’이다. 현대미술은 아무래도 위험한 걸 좋아한다. 다만 때로는 그 위험의 성격이 공식화되어 있다고 느낄때가 있다. 현대미술 내부의 게임의 법칙을 선행적으로 습득해야 독해할 수 있는 위험. 텍스트로 호출되는 위험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예술계는 무슨 산업재해 현장인가 싶지만, 대체로 희멀건 공간 안에서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대개 현대미술에서 말하는 위험은 정돈되어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리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다분히 상반되는 말이다. 다만 예술계는 확실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를 선호하는듯 한다. 예술계에서 펜은 일종의 제도/관계/법칙 등으로 작동하는데, 대체로 육체에 기반한 폭력을 다들 경시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지 ‘펜은 칼보다 강하다’가 그 어떤 조건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SNS를 무대로 혓바닥과 손가락을 주무기로 사용한다. 주먹을 쥐고 근사한 각도로 상대방 턱을 맞히는 직설적인 위험이라기보다, 준비된 언어를 근사하게 치장하여 세상을 향해 ‘이것은 정말 위험합니다!’라고 외치는 항변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유독 예술계는 위계질서 구조로 작동하는 수직적 폭력에 취약하다. 어디 작가상을 받고 해외 공간에서 전시를 했다는 예술인들의 스튜디오 갑질 괴담은 끊이질 않는다.
아나키스트이자 비평가이기도 했던 펠릭스 페네옹(1861~1944)은 당시 정치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레스토랑 폭탄 테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연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은 갑질을 저지른 교수를 향해 사제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내 절친한 친구는 지역 대학을 졸업한 후 수도의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연구원 생활을 하며 몇 년간 지옥 같은 부조리를 경험했다. 그는 종종 사제 폭탄 테러 사건을 말하며 ‘모든 대학원생이 가슴속으로 기리는 열사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폭력의 분출은 때때로 실재계의 허례허식을 폭로하기도 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운영에 참여했던 The Wrong Gallery에서 폴란드 작가 파웰 알타머는 폴란드계 이민자 두 명을 고용하여 매주 토요일마다 해당 갤러리의 유리창을 깨부수도록 만들었다. 당시 The Wrong Gallery는 뉴욕 첼시의 부유한 갤러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민자가 유리를 깨부수는 이미지와 소리는 미술장사를 원하는 부유층에게 적잖은 위화감과 공포를 전달했다. 덕분에 당시 첼시 거리 갤러리들은 주말장사를 망쳤다고 한다.
복싱에서 가장 힘든 건, 훈련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신체에 주먹을 날려야 하는 형식과 상황에 있다. 이 야만적인 스포츠가 알려주는 진실은 자못 명쾌하다. 손을 뻗지 않으면 더 많이 맞게 된다는 걸 이해하기. 그리고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이러한 형식과 룰에 대한 이해는 서로의 폭력성과 위험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오늘날 어떤 구성원은 맞는 것에만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어떤 구성원은 공격만 하면서 맞을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말로 모사하는 구색 갖추어진 담론 지형도도 중요하지만, 부조리한 역학관계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위험의 가능성을, 수행적 태도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